처음 간단한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고 난 나의 감정은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이었다. 연쇄살인범이 돌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니. 너무 참 아 신선하잖아.
그랬다. 처음은 신선했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선한건 확실했다. 영화는 그 신선함을 무기로 정재영이라는 배우의 어디선가 봤었던 것(나는 그의 연기를 좋아한다) 같은 연기로 극을 이끌어간다. 살인범과 꽃미남 모두를 훌륭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이미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 박시후의 캐스팅 또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이렇게 이렇게 좋은 재료를 가지고 시작한다. 신선한 소재의 시나리오에 괜찮은 배우 두 명이 준비되었고, 낯익은 조연들까지 간간히 보이며 대박은 아니어도 충분히 중박은 칠만한 수준의 영화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외적위용을 갖춘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이처럼 훌륭한 구색을 갖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과거와 현재가 빠르게 교차하는 괜찮은 진행에 프리러닝을 연상시키는 속도감 있는 추격씬, 거기에 액션감을 살려주는 카메라 워크까지. 영화는 속도감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으며 출발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출발을 보여준 영화는 요리사의 욕심인지 주인집사장의 요구인지 모를 이유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미명하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조미료들을 첨가하며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진지해야할 부분에서 이따금 터지는 장진식? 유머들은 이게 장진감독 영화인가? 극본인가? 할 정도로 붕 뜬 느낌이었고, 개연성을 만들기 위한 정재영의 과거장면은 지루했으며, 관객의 긴장을 짜내야하는 토론부분에서는 박시후가 털컥 '뻥이요~'하면서 김이 새버린다. 그리고 역시나 살인범이 나오는 영화에는 반전이 빠져서는 안된다며 굳이 반전 까지 끼워넣었다. 기대를 잔뜩 하게 했던 맛집이 조미료덩어리의 어디서 본듯한 메뉴들로 가득차 있음을 몸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내가 살인범이다는 참 아쉬운 영화이다. 좋은 식재료는 식재료 만으로도 맛을 낸다. 그만의 풍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살인범이다의 요리사는 좋은 요리법을 너무 많이 알고 있던 탓에 한식이 되었어야 할 식재료를 가지고 퓨전요리를 시도했다. 아쉽고, 아쉽다.
좋은 요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도 필요하고 뛰어난 요리실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만드는 요리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조금 힘을 뺀 정병길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로 오랜만에 쓰는 영화이야기.[더 테러 라이브] (0) | 2013.08.26 |
---|---|
[클라우드 아틀라스] 어렵다? 어렵지 않다. (0) | 2013.01.14 |
돈 크라이 마미. 5% 부족한 잘 만들어 질 '뻔한' 복수극. (0) | 2012.11.25 |
<퍼펙트게임>엔 있고, <투혼>엔 없는것 (0) | 2012.01.07 |
뉴욕 아이 러브 유 (1) | 2011.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