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

[아홉수 소년] 아홉수 소년이 아홉수 소년에게

July.11th 2015. 11. 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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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소년]

 

 

 

2015년 11월 도무지 올 한해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친한 친구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왜 이렇게 올해는 되는 일이 없지? 진짜 태어나서 처음이야 이런 해는"

 

"아홉수잖아"

 

'아홉수?'

 

그 순간 작년 방영했던, 호평은 받았지만 그만큼 관심은 못받았던 드라마 '아홉수 소년'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서야 아홉수 소년이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아홉수 소년의 골자는 이렇다.

 

9세의 어린 배우 동구는 귀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역변'하며 아역스타로스의 입지를 모두 잃게 되고,

 

19세의 유도선수 동구는 잘나가던 한판승의 사나이에서 유도도 사랑도 제대로 못하는 허세만 남은 고딩이 되고,

 

29세의 회사원 진구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좋아하는 여자앞에서 제대로 마음도 말 못하는 짝사랑남이 되고,

 

39세의 방송국 PD 광수는 지난 10년간 괴롭히던 처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던 그녀를 윗집 이웃으로 맞이하게 된다.

 

9세, 19세, 29세, 39세인 네 남자가 아홉수에 맞이한 인생의 큰 시련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드라마는 평범한 방식으로 정확히 재단한 듯이 네 명의 남자들의 분량을 조절하며 극을 진행한다. 상대적으로 9세인 동구의 이야기가 적기는 하지만, 인생의 깊이가 그만큼 적을테니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네 주인공들은 극 초반 각자 아홉수에 맞이한 시련을 보여주며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다. 아주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인생의 문턱에서 한번 쯤 겪었을 시련을 보여주는 것이다.

 

 

 처음 드라마를 틀었을 때만 해도, 같은 29세로써 진구의 이야기가 나를 가장 공감하고 빠져들게 할 줄 알았건만, 이게 왠걸 사실상 9세 동구의 이야기를 제외 하고는 모두가 공감가는 내용이며, 심지어 19세 민구나 39세 광수의 이야기가 내 삶과 더 닿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드라마 중간중간 느꼈다. 아, 물론 나와 동갑인 29세 진구의 비주얼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홉수 소년의 모든 소년들은 나에게 공감의 대상이고 그들이 겪는 시련들은 나에게는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아마 이런 부분이 케이블의 평범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19세의 민구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치지만 사랑했던 그녀의 과거앞에 대범하지 못한 찌질한 고딩의 모습을 보이고 만다. 나또한 19살에 만났던 그 아이의 과거에 집착하고 화를 냈던 시절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모든 게 궁금하지만 모든 걸 안다는 건 그만큼 두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29세의 나는 아는 것을 19세의 민구는 모르고 있는 모습에서 풋풋했던(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 시절이 떠올라 드라마를 끌 수가 없었다.

 

 

 29세의 회사원 진구는 한번 놓쳤던, 바보같던 자신의 행동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과거의 나 때문에 현재의 사랑을 찾지 못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참 힘든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랑으로 어떤 과거든 변하게 할 수 있지만, 상대방을 섣불리 그러한 모습을 믿지 못한다. 그게 당연하니까. 나 또한 과거의 그녀 때문에 헤어짐을 겪었고, 누군가는 과거의 나 때문에 이별을 맞이 했던 적이 있다. 진구의 이야기는 내가 공감버튼을 누르기에 차고 넘쳤다.

 

 

 극에서 진구는 친구로 지내온 세영이에 대한 마음 때문에 힘들어 하는데, 모든 매력적인 이성친구를 둔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처럼 지내다가도 순간 순간 드는 감정들에 때로는 놀라며 억누르기도 하고, 그게 잘 안되면 어줍잖은 고백을 했다가 과거형의 친구가 되어버리기도 하고, 물론 둘의 마음이 같았다면 드라마처럼 해피엔딩을 맞이할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내가 아는)은 현상유지를 택하곤 한다. 아, 물론 나도.

 

 

 39세의 광수는 29세에 헤어진 그녀를 잊지 못해 결혼은 커녕 연애조차 못하고 지내는 싱글남이다. 아무리 소개팅을 해도, 심지어 더 예쁜 여자가 다가와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때문에 쉽지가 않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녀에게는 다섯살자리 아이가 있다. 이게 아침드라마 였다면 집안의 반대와 역경등을 비비고 섞어 한편의 신파극을 만들어 냈겠지만, 아홉수 소년은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짧지만 가볍지 않게 다루며 지혜롭게 풀어갔다. 개인적으로 오정세의 아무렇지 않은 순정남의 모습과 차가워 보이려하지만 따뜻함을 숨길 수 없는 유다인의 모습이 극에서 가장 예뻤던 그림 중 하나였다.

 

 

 드라마 중간 10년만에 만난 광수를 계속 외면하는 주다인에게 광수가 하는 멋진 대사가 하나 있다.

 

"10년 전에 너는 나랑 헤어졌을지 몰라도"

 

"나는 아직 안헤어졌어"

 

 

 아홉수라서가 아닌 그거 사랑을 해봤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이야기들을 예쁘게 공감가게 잘 다뤄준,

 

 드라마 아홉수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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